목록요리에세이 (8)
싱긋 = grin = 활짝
실부플레는 영어로 please라고 한다. 그러니까 오늘 제목은 밥 짓기를 잘 부탁해 정도일까. 엄마 직업을 가진 후 최고의 고비는 밥 짓기의 지겨움에서 온다. 김훈 작가는 밥벌이의 지겨움이라고 했는데 대부분의 워킹맘이라면 밥벌이와 밥 짓기 모두 해당이겠다. 게다가 나 같은 전업 아닌 전업맘이라면 가사 외의 일하는 시간 관리가 들쭉날쭉이라서 밥 짓는 시간을 놓치기가 일쑤일 테고. 토요일 요리에세이 발행의 약속을 자꾸 어기고 있어서 마음이 불편하다. 기다리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는데. 글을 한 편 발행하고 나서 이번엔 무슨 요리로 글을 쓸까 고민이 바로 시작되는데 지금 주방의 상태가 '요리'란 것을 멋지게 해낼 만하지 못하다. 방학을 맞이하여 첫째 아이의 학습을 봐줘야 하고 기어 다니며 움직이기 시작한 둘째..
2023년은 2월 4일 오전 11시경부터 입춘. 봄이 시작되었다. 절기매직이라는 단어에 딱 맞게 입춘날 즈음이 되니 언 땅이 녹고 물기가 촉촉한 날씨. 더불어서 2월 5일은 내 생일. 추운 날씨에는 현관문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아줌마가 입춘이 되니 주말 내내 외출이다. 토요일에는 오래전 미리 예약해 둔 둘째의 스튜디오 촬영이 있었고 일요일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오프라인 모임이 있어 용기를 내보았다. 미역국 곁들인 생일밥상 차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올 해는 좀 더 보람차게 보낸 기분. 이제 먹고만 사는 수준에서 벗어난 걸지도 모르겠다. 배가 고파도 성취감이 먼저일 수 있는 여유랄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배가 고프면 성질내던 날도 있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여자들이 배가 고프면 ..
와 방학이다 방학. 짧은 한 문장이지만 엄마는 앓는 소리를 하며 읽을 테고 아이는 신난 소리로 읽을 테지. 엄마들은 방학이라 돌밥 힘들다고 난리인데 우리 아이들은 방학이라 신났을 거다. 일단 내 눈에 보이는 우리집어린이는 학교를 안 가서 좋아하긴 하지만 엄마 눈치를 많이 보고 있어서 짠하다. 포켓몬스터 게임을 시작한 뒤로 엄마 눈치를 많이 보는 초딩이 되었다. 틈만 나면 닌텐도 스위치를 붙잡고 있으니 눈치라도 봐야지. 초등학교 2학년한테 닌텐도 스위치를 사준 건 너무 빨랐나 후회가 매일 매시각이다. 근데 솔직히 큰 화면으로 게임하는 걸 보고 있으면 재밌고 멋있어서 엄마도 빠져든다. 포켓몬스터 게임이 이렇게 화려하고 멋있었구나. 게임이 9세대까지 나온다는 건 사람의 눈과 마음을 얼마나 홀려야 되는 일인지 ..
단짠의 원조 매력이 이런 걸까. 간장과 흑설탕의 단짠맛에 쫀득한 찰기와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까지. 약밥 또는 약식. 우리 집에서는 약식이라고 불렀는데 최근에는 약밥으로 더 많이들 부르는 것 같다. 결혼 전 어린 날의 설날, 구정을 맞이하면 모두 모여서 김치만두를 어마어마하게 빚고 떡만둣국으로 끓여 먹었는데 시집을 잘 온 탓에 명절음식을 하지 않고 있다. (진짜로 시집 잘 가서는 아니니까 오해하지 않으시기를) 명절 음식에도 노동총량의 법칙이 있는 걸까. 친할머니가 힘도 세고 목소리도 크게 살아계시던 시절에는 엄마랑 같이 하루 종일 녹두전 부치고 동태전 부치고 기름 냄새 절어 지내던 명절이었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던 때에는 만두만 하루 종일 빚은 것 같다. 우리 아빠가 만두피와 국수면 뽑는 기계도 좋은 걸로..
아이가 기억하는 어떠한 장면은 엄마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홈베이킹을 배울 때 우리 선생님께서 엄마가 빵을 구워주면 아이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실제로는 더 가슴에 와닿는 따뜻한 문장이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아이 낳으면서 뇌도 낳는다고 하는 항간의 말이 딱 이럴 때 들어맞는다. 어쨌든 선생님의 그 말씀을 들었을 때 매우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도 어린 시절 엄마가 밥 해준 건 평범한 기억에 머무르지만 찐빵을 만들어주고 호떡을 구워주던 기억만큼은 몇 장면 안 되더라도 조금 더 특별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간식을 만들어주는 일상은 좀 더 몽실몽실한 기억으로 저장되는 듯하다. 홈베이킹을 배운 덕분으로 어쩌다 첫째를 낳고 참 쉽게 이것저것 만들어 먹여보며 키웠다. 그러다가 열심히..
오늘의 메뉴는 단짠의 매력으로 남녀노소 누구나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돼지등갈비 요리를 준비했다. 이렇게 쉬운 줄 알았으면 진작 해볼 것을 그랬다고. 해보고 나서야 왜 그동안 안 해봤는지 후회를 했을 정도였다. 근데. 정말.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메뉴가 있을까? 내가 쓰고도 말이 안 되는 것 같다면서 조금 낄낄 거렸다. 왜 낄낄거리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혼자 낄낄거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다행이니 한 번 더 낄낄거리자. 끅끅 거려도 된다. 나는 웃을 때 가끔 끅끅 대니까. 40년 넘게 살아보니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없다는 걸 깨달았지 말이다. 그동안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것이라면 주변 사람들한테 이야기했던 편인데 그게 그들한테는 매우 피곤한 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
12월은 12월이라 주예수그리스도 성모마리아의 아드님 탄생일이 있고 시어머니아들의 탄생일도 있다. 그리하여 몸도 마음도 바쁜 12월 마지막주이다. 작년의 시어머니아들 생일상에는 임신 중의 몸으로 미역국과 소고기잡채를 해서 차려주었는데 선물과 카드가 없다고 얼마나 원망을 들었는지 모른다. 내가 아끼던 목초육 소고기 넣고 해준 잡채였는데 선물과 카드에 밀리다니. 평소엔 돼지고기 넣은 잡채를 만드는데 귀한 음식인 줄도 몰라주는 남자. 디테일 꽉 채워 있어야 하는 너란 남자. 내가 사람 참 몰라본 죄로구나.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 그래서 2022년 생일은 나의 얇은 주머니이지만 프랑스에서 날아오는 생일선물-마리아쥬프레르-도 준비하고 연어빠삐요뜨라는 요리도 준비해 보았다. 했던 음식 또 해주면 뻔..
나 혼자였다면 절대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을 겨울날이다. 첫째를 학교로 내보내며 확인한 바깥은 눈이 제법 쌓여있다. 기온은 영상과 영하를 오가는 날이라 많이 춥지는 않은 날이다. 다만 내리는 눈이 녹는 게 반 쌓이는 게 반인 것 같아 길이 미끄러울게 분명하다. 그러니 나 혼자였다면 절대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심지어 급하게 끼워 신은 신발까지 선택 실수여서 미끄럽다. 아 이런 흉한 걸음걸이라니. 조심조심 엉거주춤 어기적어기적이다. 아파트 1층에서 거리로 나오니까 하얀 눈으로 덮여 밝아진 세상이 예쁘긴 하다. 그 예쁜 주변을 찬찬히 미소 지으며 셀카라도 남기면 좋으련만 셀카 아닌 애기 유아차 사진이나 찍는 엄마. 눈으로 하얘진 주변을 감상한다기보단 눈 배경의 애기가 더 이쁘고 좋은 고슴도치 엄마이다. 마침..